2022년 3월 24일 대구 달성군 사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누군가가 소주병을 투척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투척한 남성은 자신이 인혁당(인민혁명당)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범인이 40대라서 아마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죠.
이때, 범인이 HR. 인민혁명당 홈페이지를 홍보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범인은 과거 박근혜의 "인민혁명당 관련 재판은 2개"라는 발언을 언급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이란?
인민혁명당 사건이라는 이름에는 크게 2개의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1964년 일어난 "인혁당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사건이죠. 후자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사법살인으로도 유명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고문과 사법권을 이용한 살인을 저지르고, 유가족들까지 연좌제로 괴롭힌 사건이죠. 민혁당 사건과는 관련이 없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연설 도중 두 사건을 혼동한 적이 있습니다.
인혁당 사건(1964)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 정보부장 등은 좌익 계열 정당인 인민혁명당(인혁당)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적인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 하려던"사건을 적발하여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을 전국에 수배 중이라 발표합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8년 간 감옥에 수감되었던 정만진 등은 '인혁당은 실체가 없고,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까지 변조할 만큼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라고 밝혔죠. 또한 사건 관련자들이 중앙정보부의 조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전기고문, 물고문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
1972년 1월 유신으로 인해 학생들의 대규모 반유신 저항운동을 분쇄하고자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합니다. 4월 25일 중앙 정보부장 신직수는 학생데모의 배후에는 공산당의 조종이 있었다는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합니다. 발표 요지에 따르면 민청학련은 공산계 불법 단체인 인혁당 재건위 조직과 재일 조총련계 및 일본 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 인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974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현 정부를 전복하려 획책했다는 것이었죠.
중앙정보부의 발표와 더불어 이전 인혁당 연루자들은 1974년 5월 27일 비상 군법회의의 검찰부에 의해 기소됩니다. 6월 15일부터 시작된 재판은 3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는데 10개월이 걸렸고, 3심을 거치는 동안 피고인들의 형량은 변함이 없었죠. 인혁당 연루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피고인 석에 있던 8인의 사형수 중 한 명은 혹독한 고문에 장이 항문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고 해요. 이들의 고문 사실 증언에도 판검사들의 강압적 태도로 저지됩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관련 피고인의 36명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원심대로 형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선고 바로 다음날 4월 9일, 불과 형량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이들 8명에 대한 형이 집행됩니다.
이후 평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4)은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며 사법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스위스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규정하였죠. 그리고 앰네스티에서도 판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됩니다. 또한 1995년 4월 25일 MBC 설문조사에서 판사들이 뽑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으로 뽑히기도 했죠.
마치며.
이상 박근혜 소주병 투척 사건과 관련하여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가부 폐지 확정 원인 배경 (0) | 2022.03.25 |
---|---|
이용식 눈 실명, 망막혈관폐쇄증 증상 원인 치료 (0) | 2022.03.25 |
북한 미상발사체 발사, 무력 도발 원인, ICBM 뜻 (0) | 2022.03.24 |
[김민교 집행유예] 배우 김민교 반려견 주민 습격 사망사건 총 정리 (0) | 2022.03.24 |
이창용 프로필 한국은행 총재 후보 지명 (0) | 2022.03.23 |
댓글